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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씨앗동화를 심는 작지만 큰 하루

작성자 사진: 관리자관리자




제목 : 수박의 불행한 하루


아이 더워. 온몸이 녹는 것 같네 .

나는 숨 막히는 봉지에

꽉꽉 넣어져 집으로 갔지.

이제 좀 편하게 있겠구나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 버린 채

여름이었는데, 겨울로 바뀌었지 뭐야 .

내가 냉장실에 처박힌 거야!

오들오들 와들와들 너무 추워.

그때 밝은 빛이 나더니 문이 쓱 열렸지.

이윽고 난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잔뜩 긴장하고 있어야 했지.

곧이어 무서운 칼날이 날 내리쳤으니까.

내 몸이 두 통으로 나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

나의 검은 주근깨가 보이니 너무 부끄러웠지.

주근깨를 몽땅 빼고 싶은 기분이었어.

오늘은 불행하고 불행한 날이네.





1년 넘도록 꾸준히 씨앗동화를 해온 만 8살 이주하 어린이가 수박의 하루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마트에서 식탁에 놓일 때까지 하루 새 일어난 일을 수박의 시선으로 썼습니다. 수박의 입장에서 글을 쓰다니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죠?

씨앗동화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싹이 텄습니다. 책을 재밌게 읽던 어린이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비뚤배뚤 그림으로 옮깁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로이 그렸으니, 어떤 어른 눈에는 엉망으로 보입니다. 실망한 어른의 입에서 그림은 그렇게 그리는 게 아니라며 훈수가 나갑니다. 실망은 전염력이 강하지요. 어른에게 실망을 배운 어린이도 자신의 그림을 엉망이라 여기며 실망합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보면 엉망이 아니라 ‘어머나’입니다. 어린이가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으로 더 기발하고,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미술뿐 아니라 음악, 체육, 과학, 수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끈다면 어떨까요.



씨앗동화를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씨앗동화는 부모님이나 꿈샘이라 부르는 씨앗과나무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시작합니다. 좋은 책을 읽어주면 어린이의 머릿속엔 책 내용만큼 재미난 상상 씨앗이 가득 뿌려집니다. 이때 책을 읽어주는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과 함께 스토리를 책 밖으로 불러내서 상상 씨앗이 움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씨앗동화입니다.


씨앗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은 책의 스토리를 리딩(Reading) 하는데 그치지 않고, 입체적이고, 창의적으로 리딩(Leading) 합니다.


씨앗동화는 세 딸을 키우면서 본격적으로 자라났습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온 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뛰어 놀며, 로알드 달, 페트리샤 폴라코, 엘사 베스코프 등 전 세계의 작가들과 책을 통해 친구로 만나며, 글을 읽고, 그림을 따라 그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연을 닮은 그들의 생각과 표현을 존경하며 자라났습니다.


씨앗동화를 하면서 시를 쓰고, 짧은 소설도 썼습니다. 청소년이 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해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사, 동양사, 세계사를 배우고, 외국어를 익혀가면서 점점 더 자신만의 색깔이 진해졌습니다. 저희 딸들뿐 아니라 씨앗동화를 만난 모든 어린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알아서 읽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함께 읽어주는 것이 책을 가까이하게 만드는데 더 나은 방법이고, 읽어주기만 하는 것보다 씨앗동화를 통해 책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 책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데 더 좋습니다. 씨앗동화를 통해 지식의 담을 허물고, 생각을 힘껏 움 틔우는 어린이들은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통섭(統攝)형 탐험가로 자랍니다.

우리 아이는 책을 안 읽고, 글쓰기도 싫어하는데 씨앗동화를 할 수 있을까요? 씨앗동화를 처음 접하는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씨앗동화는 이미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들도 할 수 있지만 말싹이 트기 시작한 아이, 글밥이 적은 글을 갓 읽기 시작한 어린이들도 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큰 세상』이라는 책으로 씨앗동화를 함께 해 볼까요. 이 책은 초등학생인 김규환 어린이가 현미경을 통해 본 세상에 대해 쓴 책입니다. 먼저 이 책을 어린이와 함께 읽습니다. 책을 다 읽었다면 여러 색깔의 물감이나 매직으로 계란 판 안쪽에 색칠을 합니다. 갖은 색깔로 장식이 된 계란 판이 완성되면 계란 판을 들고 어린이와 함께 산책을 나갑니다. 계란 판 색깔에 맞춰서 다양한 자연물을 채집해서 담습니다.


모아온 곤충이나 나뭇가지, 식물 잎사귀, 꽃, 돌멩이 등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의견을 자유롭게 적습니다. 모양을 따라 그려도 좋고, 느낀 점을 적거나, 자유로운 상상을 써도 좋습니다. 이쯤 되면 이제 그만하자고 해도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자꾸 자랍니다. 책 한 권과 계란 판, 현미경, 손잡고 나가는 산책만으로도 부모님과 어린이의 작지만 큰 하루가 만들어 집니다.

















다음엔 씨앗동화를 넣을 수 있는 밴딩 파일과 나무젓가락을 준비해주세요. 씨앗동화를 술술 쓰는 법을 알려 드릴게요. 씨앗동화, 어렵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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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작은씨앗 이은경

소개 : 『우리집은 행복한 학교』 저자

홈스쿨링 하는 세 딸의 엄마

씨앗동화 교육, 부모 교육, 교사 교육 강사

(주)씨앗과나무 대표


2 Comments


이인혜
이인혜
Aug 21, 2020

수박의 불행한 하루.. 정말 재미있네요~ 최고입니다! ^^


아이의 글과 그림에 '어머나..' 하지 못해서 부끄럽네요.

어머나!를 꼭 기억하며,

아이와 함께 오늘의 씨앗을 심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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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연
Jul 27, 2020

보물같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아이들이랑 꼭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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