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정호승 시인의 <반달>이라는 시 가운데 일부입니다. 달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우리는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달을 여러 이름으로 부릅니다. 우리가 널리 아는 이름은 보름달, 반달, 초승달 정도이지만 반달보다 조금 더 차오른 볼록 달도 있습니다. 그믐달을 삭이라고 하며, 보름달은 망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달은 자기 이름이 많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밤하늘에서 기울고 차오릅니다.
달만 그런가요. 시계도 시침과 분침, 초침이 서로 합쳐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잠시 함께 있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들은 서로 멀어지고 있는 걸까요, 다시 가까워지는 중일까요. 시계 침들의 멀어짐은 가까워짐과 같고, 달의 기울기는 차오르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삭도 망도 아닌 반달은 우리가 얼마나 삶과 사랑을 대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와 오만을 가지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달처럼 밝고, 맑은 우리 어린이들은 어떤가요. 망처럼 환하게 웃기도 하고, 삭처럼 어두운 표정을 할 때도 있지요. 가만히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험한 일도 참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민도 되고, 걱정도 생깁니다. 동서고금 부모의 자식을 향한 바람이야 다 셀 수가 있을까요. 부모의 무궁한 기대와 반대로 철부지 청개구리 같은 우리 어린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글쓰기라고 개굴개굴 선언합니다.
식탁에서 채소를 안 먹는 정도의 일이라면 잘게 잘라서 볶음밥이나 스파게티에 넣어서 먹이겠지만 세상에서 글쓰기를 가장 싫어하는 아이에게 글쓰기를 잘게 잘라 먹일 수도 없고, 멋진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부모 중 누굴 닮아서 그런가 한탄까지 나옵니다.
시계 침들의 멀어짐은 가까워짐과 같고, 달의 기울기는 차오르기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세상에서 글쓰기가 가장 싫다는 어린이는 글쓰기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가 되기에 놀라울 정도로 가까운 자리에 있습니다.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글쓰기의 맛을 알면 체증처럼 막혀 있던 표현이 뻥 뚫리는 순간이 옵니다. 씨앗동화는 스킬(skill)보단 스킨십(skinship)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려면 생각의 샘이 먼저 터져야 합니다. 살갗이 서로 닿는 일만큼 마음 피부에 닿는 일은 어린이들 글쓰기에 안정감과 자신감을 줍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어린이들에게 책을 알아서 읽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함께 읽어주는 것이 좋고, 읽어주기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감각, 더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해야 생각의 샘이 터집니다. 책을 읽은 뒤 맛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상상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책 읽는 단계에서 글 쓰는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해집니다.
마음 피부에 스킨십을 듬뿍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드릴게요. 어린이들과 동화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인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를 읽어볼게요.
씨앗동화를 하기 전에 항상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하게 마음 피부를 만져주는 일이거든요. 어린이와 『달 샤베트』를 함께 읽고, 시원하고 맛있는 오렌지 주스와 A4지, 필기도구를 준비해주세요. 마트에선 오렌지 주스였지만 『달 샤베트』로 씨앗동화를 하는 어린이에겐 세상 귀한 달물입니다. 달물을 마신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 보세요.
엄마 : 엄마가 OO(이)를 위해 달물을 받아왔어. 마셔볼래?
아이 : 네? 달물이요? 엄마가 달물을 직접 받아오셨어요?
엄마 : 응. 엄마가 우리 OO(이) 주려고 받아왔어. OO(이)가 달물이 있다면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글로 한 번 써볼래?
달물의 시원달달한 맛이 입에 남아 있는 어린이들은 글 쓰는 일이 즐겁습니다. 달물이 필요한 세상 곳곳으로 뻗어나갑니다. 달물 맛을 본 아이가 어떤 글을 썼는지 한 번 볼까요.

제목 : 새 마을에 달 샤베트를 팔러간 아이
어떤 아이가 아주 더운 봄날 밤에 사다리를 타고 달을 가지고 내려왔어. 그 아이는 달을 엄마에게 전해줬어. 아이는 엄마에게 샤베트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어. 아이는 샤베트를 새 마을 사람들에게 샤베트를 팔 생각이었어. 그 아이 집은 가난했거든.
아이는 엄마와 함께 새 마을에 갔어. 새 마을은 불이 온통 꺼져 있고, 모두 모여 공원에서 회의를 열고 있었어. 그때 뒤에서 아주 커다란 불빛이 번쩍였어. 뒤를 돌아보니까 아주 밝고, 시원한 달 샤베트를 엄마와 아이가 팔러 온 거야.
달 샤베트를 사서 먹고 가족이 먹을 것들도 샀어. 새 마을 사람들을 다 나누어줬는데도 아직 많이 남았어. 아이는 엄마와 종이 마을, 반짝이 마을, 강아지 마을에 나눠줬는데 샤베트는 많이 남아 있어서 기계 마을, 의자 마을, 생쥐 마을에서도 샤베트를 팔았어.
그리고 이제 샤베트는 세 개가 남았어. 아이는 자기 몫을 먹었고, 엄마에게 엄마 몫을 줬어. 마지막 하나는 아빠에게 나눠줬어. 아이는 샤베트를 판 돈으로 필요한 물건, 집, 그리고 또 양식을 많이 샀어. 그 아이는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잘 살았대.
만 7살 김가온 어린이가 <달 샤베트>를 읽고, 새들이 사는 마을로 달 샤베트를 팔러가는 상상을 쓴 글입니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마을을 다니며, 달 샤베트를 판매한 것도 기특하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와 나눠먹는 장면이 사랑스럽고 따뜻합니다.
아이 마음속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몰래 들여다 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품고 자라는 아이라면 새들이 사는 마을 뿐 아니라 세상 어디서든 두려움 없이 꿈을 펼칠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엔 기름종이와 실을 준비해주세요. 상처받은 어린이를 위한 씨앗동화를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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