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누군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포근한 겨울이고, 책과 함께 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계절입니다.
지난 글에서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씨앗동화를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드렸어요. 어린이들에게 알아서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는 것이 더 낫고, 읽어주기만 하는 것보다 씨앗동화를 통해 책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 책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데 더 좋아요.
씨앗동화는 통섭형 교육입니다. 통섭이란 과학은 과학끼리, 언어는 언어끼리, 예술은 예술끼리 따로 배우던 지식 간의 담장을 없애고, 두루 통합해서 익힌다는 뜻입니다. 통섭이란 단어는 어렵지만 씨앗동화는 쉽습니다. 대신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요령에 대해서 알려드릴 거예요.
먼저 밴딩 파일과 나무젓가락을 준비해 주세요. 여러 종류의 밴딩 파일 가운데 악보 파일이라는 게 있어요. 악보 파일은 위아래 부분에만 띠지로 고정이 되어 있어서, 끼워 넣은 내지를 번번이 꺼내지 않아도 어린이들의 글이나 그림에 첨삭이 가능합니다. 밴딩 파일은 씨앗동화를 만들 때 무척 중요합니다.
어릴 때 독후감을 써본 기억이 나시나요? 재밌게 읽은 책이라도 독후감만 쓰려고 하면 멀쩡한 몸이 꽈배기로 변신했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왜 독후감은 재미가 없어서 몸이 배배 꼬일까요. 하물며 책읽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에게 독후감이란 채소를 채소 쌈에 싸먹는 일처럼 느껴질 거예요.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독후감을 쓸 때, 재미있었다, 무서웠다, 힘들었다, 혹은 재밌었다, 이런 짤막한 단어로 서둘러 마무리 합니다. 어린이들이 쓴 글이 너무 간단하고, 상황 설명도 부족하고, 또 다른 재미있었던 일들은 왜 빼놓고 안 썼는지, 왜 그렇게 빨리 마무리를 지어버리는지 어른들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자유로이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은 독후감 쓰기나 씨앗동화가 마찬가지인데 왜 독후감은 몇 줄 이어가기가 힘들고, 씨앗동화는 종이가 모자랄 지경으로 신나게 써내려 갈까요.
우리 고유의 무예인 택견을 예로 들어볼까요. 택견은 기합 소리로 익크, 에이크 하는 소리를 냅니다. 겨루는 상대끼리 동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연스러운 숨소리를 들이키고, 내뱉습니다. 이러한 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힘을 모으고, 부드럽지만 격렬한 동작을 만듭니다. 씨앗동화는 택견의 익크, 에이크처럼 부모님이나 씨앗과나무 꿈샘이 어린이들과 대화하면서 머릿속 상상력을 부드럽지만 힘 있게 끌어냅니다. 지금은 청소년이 된 큰 딸 혜미가 만 4살 때 지은 씨앗동화를 예로 들어볼게요.
엄마: 옛날 옛날 깊은 숲 속에 누가 살았을까?
혜미: 혜미요.
엄마: 깊은 숲 속에혜미가 살았구나. 그리고 또 누가 있었을까?
혜미: 호랑이요.
엄마: 우와. 혜미와 호랑이가 같이 있었구나. 그런데 둘이서 뭐 하고 있었을까?
혜미: 둘이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엄마: 그랬구나. 둘이 같이 밥을 먹고 있었구나. 뭘 먹고 있었어?
혜미: 김치찌개랑 밥이요.
엄마: 오. 호랑이도 김치찌개랑 밥 먹었어?
혜미: 네, 소시지도 같이 먹었어요.
엄마: 호랑이가 김치찌개 먹고 어떻게 했어?
혜미: "아~ 매워요. 물 주세요." 했어요.
네 살배기 어린이에게 아무 이야기나 지어보라고 하면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울까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어주면 그 공간 안에서 자유로이 상상하며 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혜미는 상상 속 숲에서 커다란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함께 김치찌개와 소시지를 나눠 먹었군요. 김치찌개는혜미가 좋아하는 반찬이지만 호랑이 입에는 매웠나 보네요.
이 씨앗동화를 지을 땐 혜미가 한글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듣고, 기억해두었다가 잊기 전에 재빨리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스스로 지은 첫 씨앗동화라 그런지 지금도 읽어주면 참 좋아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자신이 만든 씨앗동화를 밴딩 파일에 넣어놓고 두고두고 들춰 보면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간혹 다른 글을 쓸 때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칭찬과 자랑이 햇볕과 비옥한 흙이라면 반추와 비교는 비와 바람입니다. 씨앗동화가 담긴 밴딩 파일은 햇볕과 흙, 비와 바람처럼 성장에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됩니다. 그러면 나무젓가락은 씨앗동화에 어떻게 쓰일까요. 나무젓가락으로 마법의 연필을 만들 거예요.
나무젓가락을 연필깎이에 넣어서 끝 부분을 연필처럼 깎아주세요. 뾰족해진 부분을 네임 펜으로 칠해서 연필심 모양을 그려주세요.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마법의 연필은 어떻게 쓰는 걸까요. 어린이가 글 쓸 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마법의 연필을 꺼내서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습니다. 마법의 연필은 생각의 힘이 생기게 만듭니다. 글이 술술 써지게 합니다. 마법의 연필은 의심 많은 어른들에겐 별다른 마법을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직접 애정을 담아 만든 마법의 연필은 어린이의 손끝에서 따뜻한 마법을 보여줍니다.
마야인들은 걱정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을 때 걱정 인형이라 부르는 조그만 인형들에게 걱정을 속삭이고, 베개 아래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면 밤사이에 인형들이 걱정을 가져가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백 년째 마야 어린이들은 걱정 인형을 가까이 두고 잠이 듭니다. 잠자리에서 걱정 인형이 걱정을 가져가는 것처럼 책상 위에 둔 마법의 연필은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잘 쓰지도, 잘 그리지도 않은 어린이의 작품 하나가 뭐가 그리 소중하냐고, 쉽게 버리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작은 먼지 구름이 모여 별이 되고, 별이 모여 우주가 됩니다.
어린이들의 즐거운 빅뱅을 밴딩 파일과 마법의 연필로 반짝반짝 응원해주세요. 씨앗동화는 어린이들의 우주에 가장 작은 먼지가 될 거예요. 다음엔 오렌지주스와 A4지를 준비해주세요. 다음 달엔 글쓰기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는 어린이를 위한 씨앗동화에 대해서 알려드릴게요.
마법의 연필, 정말 멋져요!
저에게도 꼭 필요했는데 말이죠^^